사업 공고 후 입찰이 진행되면 공사는 심의위원회를 열어 최종 낙찰 기관을 결정한다. 여느 사업이 그렇듯,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곳이 낙찰되는 ‘최고가 경쟁 입찰’을 원칙으로 한다. 단, 금액만 높게 부른다고 해서 누구나 역명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입찰 기준이 제법 까다롭다. 기본적으로 역으로부터 1km 안에 있으면서, 공서양속(公序良俗)을 훼손시키거나 공사 이미지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기관이어야 한다. 해당 기관명에 대한 안내가 불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도 위원회 심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이 같은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해도 역명을 사용할 수 없다.
응찰금액이 동일한 경우엔 공공성, 편의성을 고려한 순위에 따라 낙찰 기관을 선정한다. 의료기관은 5개 종류 기관 중 3순위에 해당한다. 공익기관(지명, 관공서, 공익시설, 공공기관), 학교보다 순위가 낮고, 기업체, 다중 이용시설(호텔, 백화점 등)보다는 순위가 높다.
순번 상으로는 3순위지만, 실제 사용 비중은 기업체 다음으로 많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전체 역명 병기 35개역 중 11개역(31.4%)을 의료기관이 쓰고 있다. 역명 병기 중인 서울 지하철역(서울교통공사 운영 역) 3곳 중 1곳에 병원 이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역 ▲▲병원’을 어렵지 않게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이유다. 2022년부터는 서울교통공사가 병기 역명 대상기관 중 의료기관 기준을 완화하면서 의료기관 종류와 병상 수에 관계없이 의료법 제3조2항에 해당하는 모든 의료기관이 역명을 쓸 수 있게 됐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역명병기는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본적인 참가 자격 기준이 정해져 있다”며 “2021년 11월 지하철 운영기관의 경영개선과 역명병기 수요에 대한 형평성 차원에서 거리제한 완화, 의료기관 선정기준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계약 기간 3년 동안 1억~3억원대 비용을 지불한다. 매년 4000만원~1억원씩 내가며 역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홍보 효과가 좋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 1~9호선의 경우 한 해(2023년 기준) 승차 인원이 약 15억4700만명에 이른다. 역명에 의료기관이 병기된 역으로 범위를 좁혀도 ▲학동역 765만명 ▲구파발역 751만명 ▲발산역 738만명 ▲문래역 736만명 ▲서대문역 650만명 ▲강동역 631만명 등 600~700만명에 달한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노출된다면 1억원 이상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 유치 경쟁이 심한 역세권 병원에게는 역명 병기가 좋은 홍보수단일 수 있다. 실제 역명을 사용 중인 A병원 관계자는 “인지도 측면에서 확실히 효과가 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을 감수하는 것”이라며 “비급여 진료를 많이 보거나 마케팅 비용을 높게 책정하는 병원의 경우, 환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면 그 정도 금액을 지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환자·매출 증가보다는 내원객 편의성 측면에서 효과를 기대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서울 외곽에 위치했거나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인지도가 낮은 병원의 경우, 내원객들이 역명을 보고 듣고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역명 병기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B병원 관계자는 “역명을 쓴다고 해서 매출이나 환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며 “지하철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의도다”고 했다. C병원 관계자 또한 “광고 효과를 측정할 수 없고, 애초에 광고보다는 멀리서 오는 환자들의 편의성 목적이 컸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도 역명 병기를 희망하는 의료기관이 많아질지는 미지수다. 병원 입장에서는 사용료가 비싸질수록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병원 관계자는 “입찰 시점이 됐을 때 이미 병원의 인지도가 높으면 역명 병기 필요성이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F병원 관계자 또한 “재계약 시점이 돼봐야 알겠지만, 사용료가 지금보다 많이 올라간다면 입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최근 서울교통공사에 역명 병기 희망을 문의하는 의료기관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에 대해 유정훈 교수는 “이제는 서로 수요와 공급이 안 맞는 것”이라며 “병원은 이용객이 적고 인지도 낮은 역이면 인지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입찰하지 않는다”고 했다.